1. 벚꽃과 정원의 조화
일본의 봄을 상징하는 벚꽃, 벚꽃은 단순한 꽃나무가 아니라 정원의 철학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벚꽃은 ‘덧없음’을 품고 피고 지는 꽃입니다. 정원관리사로서 저는 벚꽃을 그저 보기 좋은 나무로 보지 않습니다. 정원의 구성과 철학적 메시지를 담는 중심축으로 봅니다. 봄이 되면 일본 정원에서는 벚꽃 중심의 동선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사쿠라가 피는 방향에 따라 자갈길의 곡선이 살짝 휘어지고, 그 끝에 놓인 벤치는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에 맞춰 설치됩니다. 이처럼 ‘자연을 배치’하는 정원 설계는 단순한 식재가 아니라, 감각을 디자이닝 하는 작업입니다.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조용한 연못 옆으로 늘어선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물 위를 덮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벚꽃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것이 물과 바람, 정원의 구조물과 어우러지는 ‘전체적인 장면 연출’의 결과입니다. 일본에서는 ‘요자쿠라(夜桜)’라고 하여 밤에 벚꽃을 감상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때 정원 조명을 활용한 연출이 중요해집니다. 백색 LED 조명으로 벚꽃의 분홍빛을 살리되, 그림자가 너무 강하게 지지 않도록 각도를 조정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한국의 정원에서도 조명을 활용하면 벚꽃뿐 아니라 계절 식물들을 더욱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연못가 벚꽃나무 아래 나무 벤치가 놓여 있고, 벚꽃이 흩날리며 벤치 위에 수북이 쌓인 장면. 이 장면은 ‘정원의 정서’를 시각화한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2. 이끼와 음지식물을 통한 공간을 채우는 대신 비우는 기술
일본 정원에서 이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과 습도의 축적을 상징합니다. 봄은 이끼가 가장 아름답게 자라는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땅이 서서히 녹고, 일정한 습도와 간접광이 유지되며, 정원의 바닥이나 그늘진 돌 틈에서 녹색 카펫처럼 이끼가 퍼집니다. 이끼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부러 물길을 만들거나, 수분이 오래 머무는 자리에 납작한 돌을 배열해 그 주변에 이끼가 자라도록 유도합니다. 습기 센 날씨가 많은 교토에서는 수백 년 된 이끼 정원이 보존되고 있는데, 이끼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감과 질감이 깊어집니다. 음지식물의 조화도 중요한데, 대표적으로는 호스타, 디센트라, 철쭉의 음지 품종 등을 활용합니다. 특히 디센트라는 물방울 모양의 꽃이 줄기에 매달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끼와 어우러졌을 때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돌 위에 얇게 두르는 형태로 이끼를 붙이고, 물을 분무기로 매일 뿌려주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특히 봄철엔 해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도 이끼 가드닝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깊은 녹음의 정원 한편, 바위 사이사이로 퍼지는 이끼와 호스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3. 사계절을 연결하는 일본식 정원의 기본 설계
봄의 가드닝은 단지 현재의 아름다움을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계절을 연결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첫 단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봄에 튤립과 수선화를 심을 때, 그 주변에 여름에 피는 수국 묘목을 함께 심는 것이 일본식 정원의 기본 설계입니다. 봄의 꽃이 지면 바로 여름 꽃이 자리를 채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깁니다. 또한, 가을을 위해 단풍나무를 심되, 이른 봄에도 붉은 새순이 돋아나는 아타베 마에노모미지를 선택하면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 정원은 계절 간의 연결을 세심하게 계획합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정원에 감성 조명을 더한 야경 가드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조경과 조명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식물의 그림자마저도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활용됩니다. 벚꽃 아래 낮은 조명, 수국 옆으로 푸른 LED 라이트, 이끼 위를 비추는 은은한 노란 조명 등은 정원에 시간을 더하고 감정을 부여합니다. 일본 봄 가드닝의 진정한 의미는 단지 꽃을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흐름을 읽고, 공간에 감정을 설계하며, 시간의 흐름까지 디자인하는 작업입니다. 벚꽃 한 그루의 위치, 이끼의 방향, 조명의 색감 하나까지도 모두 철저한 계획 하에 구성됩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식 봄 정원의 감성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습니다. 벚꽃 대신 철쭉이나 매화를 활용하고, 조명이나 물길, 돌의 배열을 고려한다면 감성적이고 의미 있는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원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감정을 머무르게 합니다. 그 무대 위에 계절과 이야기를 담는 것이 일본 정원관리사의 역할이며, 여러분도 그 연출자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