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고요한 생명이 깨어나는 사찰 정원과 수행자의 하루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화계사는 천년고찰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불심을 품어온 사찰입니다. 이곳의 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입니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봄철 정원 관리가 시작되면 정원관리사인 저의 하루도 본격적으로 분주해집니다. 아침 예불이 끝난 후, 흙의 온도를 확인하고, 겨우내 덮어 두었던 낙엽을 걷어내며 햇볕이 고르게 퍼지도록 식물의 자리를 조정합니다. 경내의 벚나무는 20그루 이상이며, 대웅전 앞 돌계단 옆으로는 수양벚나무가 길게 가지를 늘어뜨려 마치 꽃구름 터널을 형성합니다. 봄바람이 불면 벚꽃 잎이 수행자들의 발걸음 위로 흩날리며, 그 모습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길을 따라 걷는 행인들은 대부분 "꽃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하십니다. 정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존재가 됩니다. 저는 이맘때가 되면 특히 조심스러워집니다. 흙 하나, 가지 하나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극락전 옆에는 봄마다 자생하는 냉이, 달래, 민들레가 자라납니다.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반복된 햇빛, 물, 발길이 만든 생태적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뽑거나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수행은 '억제'가 아니라 '관찰'과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화계사 일주문에서 극락전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은 매년 4월 초 절정을 맞습니다.
2. 사찰 정원 배치와 불교적 상징
사찰의 정원은 단순한 풍경이 아닙니다. 모든 식물에는 위치, 종류, 조화가 분명한 의미를 담고 배치됩니다. 화계사 정원의 중심에는 보리수나무가 있습니다. 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이며, 수행자들에게 ‘참나’를 상기시키는 식물입니다. 이 나무 아래 작은 의자가 있는데, 매일 오후 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잠시 앉아 명상하거나 독경을 합니다. 식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정신을 깨우는 동반자입니다. 정원 관리자는 식물의 건강만이 아니라 그 상징성까지 돌봅니다. 예를 들어 연못가의 연꽃은 여름에 피지만, 봄에는 뿌리 주변의 진흙을 정돈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잎을 보호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연꽃은 ‘더러움 속에서 피는 청정함’을 뜻하며, 그 이미지를 해치지 않도록 물청소도 하루에 한 번씩 진행합니다. 때때로 신도들이 던진 동전이 연못을 더럽히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직접 손을 넣어 조용히 건져냅니다. 이것 또한 수행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동선 설계’입니다. 화계사 정원은 일부러 사선형으로 길을 내어 걷는 이가 속도를 늦추도록 유도합니다. 직선길은 지나침을 유도하지만, 곡선은 머무름을 불러옵니다. 특히 경내 후원에는 대나무 숲과 작약이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 봄의 작약이 피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 주변에만 은은한 향이 퍼지며, 수행자가 자신의 호흡과 감정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정신적 장치’가 됩니다.
3. 사찰 가드닝 – 내 삶에 적용하는 명상 식물
누구나 정원을 가꿀 수는 없지만, 누구나 마음을 가꿀 수 있습니다. 화계사의 정원 철학을 집 안, 베란다, 작은 화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거실 창가에는 로즈메리, 백리향 같은 허브를 두어 기운을 정화하세요. 주방 창문엔 향이 부드럽고 꽃이 피는 애플민트나 라벤더를 두면 요리하면서도 힐링이 됩니다. 정원을 너무 반듯하게 정리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찰 정원은 자연스러움을 존중합니다. 땅에 떨어진 꽃잎을 그대로 두고, 다소 흐트러진 모양도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평온함을 줍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3~5분만 식물에게 물을 주며 그 생명에 집중해 보세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듣는 시간은 일상 속 수행이 됩니다. 최근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나만의 가드닝 노트’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물 이름을 쓰고, 물을 준 날짜를 기록하고, 한 줄 감상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그것이 삶의 균형으로 이어집니다. 정원은 계절의 변화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마음 상태, 그날의 집중력, 주변 환경, 관계의 온도까지 모두 반영합니다. 화계사 정원을 가꾸면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자연을 가꾸는 일이 곧 나를 가꾸는 일이란 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삶 속에서 작은 ‘화계사’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벚꽃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